백양산 자락의 높은곳에 자리한 운수사는 고즈넉해! (갈멧길6코스~ (부산 사상구)
운수사 이야기
사상구의 갈멧길 6코스인 백양산 운수사길은 원만해서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운수사는 산아래서 보면 높게 보이지만 약간의 숨가픔이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
운수사는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 산5번지 백양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가락국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발견된 것은 아직 없다
1972년(임자년)에 세워진 운수사 사적비가 있다.
이 비는 당시 주지였던 동천(洞天)스님의 청에 의해
운허(耘虛)스님께서 내용을 작성하시고, 무불(無佛)스님이 글씨를 쓰셨다.
너무나 유명한 운허스님(1892~1980)은 이 시대 최고의 학자승(學者僧)이자 대종사(大宗師)였었다.
스 님은 팔만대장경 전부를 한글로 옮기는 역경사업을 맡아 그 사업을 완수하셨다.
동국역경원원장직을 맡아 한글대장경을 완간해 내셨다.
스님은 학문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도량과 인품까지도 훌륭하신 분이셨다.
이러한 분께서 비문에서 밝히기로, “운수사는 가락국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근거가 남아 있지 않아
그대로 믿기가 어렵고, 아마 <신라 중대 법흥왕 때 쯤 창건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운수사는 안타깝게도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람 전체가 불타고,
1660년에 현재의 대웅전이 다시 중수되었다.
그리고 조선 영조 때 출간된 여지도서(輿 地圖書)와 동래부지(東萊府誌)에는
부산지역에 “범어사, 운수사, 선암사, 마하사”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운수사가 조선시대 때 이미 역사 깊은 중요한 사찰로 분류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1735년 중건된 김천 직지사 대웅전 중창 상 량문에는
운수사 대중이 직지사 대웅전중창 불사에 참여하였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현 직지사 대웅전은) 영조 11년(1735) 중건되었으며 당시 중건에는 주지 수변화상,
전 주지 설운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써 이룩되었다.
그 관계자는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 개와공, 도감, 그리고 화사,
총찰도감, 도와도감등 50여 명의 산중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그리고 조선시대의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는
옛날 운수사의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펴졌던 것을 운수모종(雲水暮鐘)이라 하여,
사상 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고즈넉한 운수사 라는 이야기
갈멧길 6코스에서 운수사 대웅전으로 올라가는길
높은 곳에 있는 대웅전은 멀리 낙동강과
삼락공원 김해공항이 보이는 이야기
운수사 대웅전
여기는 대웅전 앞인데 멀리 김해와 흐르는 낙동강도 보이는 이야기
날씨가 좋으면 진해 장복산도 보인다고 하네요
애진봉괴 헬기장으로 올라가는 길
운수사의 전경이라는 이야기
점심밥 지을때는 연기가 나는 정겨운 이야기
운수사 대웅전이 있는 이야기
높은곳에 있는 대웅전이 다른곳과 다르죠
주렁주렁 몸에 좋은 메주가 올해의 마무리를 이야기 하는 운수사
운수사 마당 이야기
점심때면 등산객과 절을 방문 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밥을 제공한다고
하는 나눔 이야기
절밥이 맛있다고 하는데 저두 함 먹어봐야 겠네요
운수사의 겨울 이야기
점심때가 되여가는지 굴뚝에선 연기가 피여나는 맛있는 이야기
집에서 왕복 2시간 30분이면 천천히 다녀올 수 있는 운수사
날마다는 못가고
가끔씩 걷고 보고 느끼며 가보는 이야기
문이 닫혀있는 운수사 전 용기가 없어서
차마 문을 열지 못한 아쉬움
대웅전과 내부를 못 담아서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움이 많은 이야기
좋은 하루 되세요
공감 꾹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