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산운수사 가는길 벚꽃이 하얀 눈꽃 피웠네 ~~ 갈맷길 6~1코스 (부산 사상구)
운수사가는길 벚꽃 이야기
누구나 쉽게 걷고 보고 쉽게 산행 할수있는 운수사 백양산길은 갈맷길 6~1코스
신모라에서 시작해서 백양터널 요금소를 지나 올라가는 쉬운 코스
시간되면 자주 걷고 보고 가는 코스다
걷는 코스길 옆으론 계곡에 물이 흐르고 요즘 벚꽃이피여 지고는 있지만
물소리 벗삼아 걷기 좋은 코스다
걷다보면 버려진 고양이들도 만나고 이제 피기시작하는
조팝나무꽃 진달래꽃 제비꽃 그외 많은 꽃들과 새들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
수면서 마시는 뜨거운 커피 한잔은 내게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가는 시간이 아쉽다는 한숨도 짖게 한다
백양산은 정상에 예진봉이라는 예쁜 말의 정상석이 우뚝 서있고
부산의 이곳 저곳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어디서나 쉽게 오를 수 있는 많은 코스가 다양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백양산 갈맷길 6~1코스 백양산 예진봉 (642m) 이야기
백양터널 요금소를 지나서 부터 초입 산길이 시작되는 갈맷길
벚꽃나무가 줄지여 계곡과 함께 하고 흐르는
물소리는 봄을 노래 하는듯~~
이곳의 벚꽃은 다른 벚꽃과 다른것 같다
꽃이작다는 이야기
봄 참 좋다
작은 숲속 도서관이 있고 쉴 수 있는 백양산 가는길
봄 소리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예쁜길 걷고 보고 가다보면 운수사가 나온다는 이야기
운수사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면 삼락생태공원 낙동강 김해공항
진해쪽도 보이는 이야기
운수사
운수사는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 산5번지 백양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 범어사의 말사이다.
가락국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유물이 발견된 것은 아직 없다.
하지만 현재 운수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기록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972년(임자년)에 세워진 운수사 사적비가 있다.
이 비는 당시 주지였던 동천(洞天)스님의 청에 의해 운허(耘虛)스님께서 내용을 작성하시고,
무불(無佛)스님이 글씨를 쓰셨다.
너무나 유명한 운허스님(1892~1980)은 이 시대 최고의 학자승(學者僧)이자 대종사(大宗師)였었다.
스 님은 팔만대장경 전부를 한글로 옮기는 역경사업을 맡아
그 사업을 완수하셨다. 동국역경원원장직을 맡아 한글대장경을 완간해 내셨다.
스님은 학문적으로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도량과
인품까지도 훌륭하신 분이셨다.
이러한 분께서 비문에서 밝히기로, “운수사는 가락국 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이나 근거가 남아 있지 않아 그대로 믿기가 어렵고,
아마 <신라 중대 법흥왕 때 쯤 창건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운수사는 안타깝게도
1592년 임진왜란 때 가람 전체가 불타고,
1660년에 현재의 대웅전이 다시 중수되었다.
그리고 조선 영조 때 출간된 여지도서(輿 地圖書)와 동래부지(東萊府誌)에는
부산지역에 “범어사, 운수사, 선암사, 마하사”가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는 운수사가 조선시대 때 이미 역사 깊은 중요한 사찰로 분류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고 1735년 중건된 김천 직지사 대웅전 중창 상 량문에는
운수사 대중이 직지사 대웅전중창 불사에 참여하였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현 직지사 대웅전은) 영조 11년(1735) 중건되었으며
당시 중건에는 주지 수변화상, 전 주지 설운종익 그리고 태감화상을 비롯하여
산중 대중의 협력과 시주로써 이룩되었다.
그 관계자는 상대목 동래 운수사의 치백과 도목수 설인을 비롯하여
목수 20여 명과 야장, 개와공, 도감, 그리고 화사, 총찰도감,
도와도감등 50여 명의 산중대중과 900여 명의 시주가 참가하였다.
그리고 조선시대의 동래부읍지(東萊府邑誌)에는
옛날 운수사의 저녁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펴졌던 것을
운수모종(雲水暮鐘)이라 하여,
사상 팔경 중 하나로 꼽았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주 걷는 걷고 보고 운수사가는 갈맷길 6~1코스
벚꽃과 계곡이 예뻐서 올려본
내 걷고보고 느낀 이야기 였어요
부산에서 사시는 분들은 한번쯤 걸어보시면 좋을것 같은 갈맷길
6~1코스
백양산 예진봉(642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