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왕의길[신문왕호국행차길] 걷기좋고 예쁜길 낙엽이 쌓여서 푹 빠지며 걷는다 (경북 경주시)
왕의길 이야기
부산에서 가까운 경주
그곳에 왕의길이 있다고 한다
추운 날씨 한파주의보지만 따라 가본다
보온통에 물 넣고 점심은 무룽지 끓여서 가져간다
첨엔 엄두가 안났지만 산에 오니 오히려 포근하고 좋다
여성트레킹 80명이 넘는 회원들이 함께했다
행렬또한 멋졌다
황룡약수백숙식당/수렛재/기림사주차장 / 약 7.0Km
모차골:마차가 다닌곳이라 하여 "마차골"로 불리다가 "모차골"이라한다
수렛재:수레가 넘어다녔던 고개라는 의미로 이름 붙여졌다한다
말구부리:급한 경사길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구부려졌다고한다
세수방:신문왕이 긴 여정에 잠시 쉬며 손을 씻었던 곳이라한다
용연폭표:신문왕이 받은 옥대의 용 장식 하나를 시냇물에 담그니 진짜
용이 되어 승천하고 깊은 연못과 폭표가 생겨났다고한다 [옮겨온글]
여성트레킹의 멋진 이야기
얏...호
카메라가 찍다보니 이렇게된 이야기
속상하다
낙엽이 무릎까지 쌓여있다
낙엽이 넘 많이 쌓여서 위험했다
용현 폭포다
용현폭포도 꽁꽁..1월 25일의 날씨 많이 추웠다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
왕의길..왕과 숲
경주시내 중심지에서 남쪽으로 약 6㎞ 떨어진 곳에 있다.
배동의 서천(西川) 동안(東岸)에는 소나무의
노거목이 있고, 모량천(毛良川)과의 합류점 부근에는
가슴높이둘레 100㎝에 달하는 왕버들이 몇 그루 남아 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서안(西岸)은 소나무와 왕버들이 더 많이 자라고 팽나무도 뒤섞여
자라는 숲이다.
그 가운데
소나무숲은 가슴높이 둘레 최대의 것이 70㎝에 이르고,
울폐가 잘 유지되고 있다.
이 숲은 목랑(木郎)을 제사한 곳인데,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평왕의 집사(執事) 비형(鼻荊)은 뭇 귀신을 통솔할 수 있는 힘이 있었고,
하룻밤 동안에
귀교(鬼橋)라는 큰 돌다리를 만들었다고 하며,
길달(吉達)이라는 귀신을 추천해서 서정(庶政:온갖 政事)을 보좌시키기도 하였다
그 뒤 길달이 도망을 가자,
비형은 다른 귀신으로 하여금 길달을 잡아서 죽였으므로, 다른 귀신들은
그때부터 비형을 크게 무서워하고 비형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도망을 치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비형을 가사로 한 것을 문간에 붙이고,
잡귀신을 쫓아내는 부적으로 삼는 향속(鄕俗)을
만들어냈다. 이것을 목랑이라고 말하며, 한편으로는 두두리(豆豆里)라고 칭하였다.
왕가숲은 이 목랑을 제사하는 곳이었다
1231년(고종 18) 몽고 병사들이 침입해 왔을 때 목랑의 신탁(神託:신의 분부와 명령)을 숭앙하는 바
있었으나 영험이 없었다고 한다비형의 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의한 것인데,
그 내용은 행복을 주는 귀신은 재앙을 만들어 내는 귀신을
사역할 수 있고, 사람이 재앙을 면하자면
그 통솔자인 지배의 신에게 의뢰해서 잡귀신을 다스려 줄 것을 부탁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뜻을담고 있다
그리고 신불을 제사하자면 큰 나무가 있는 숲이 좋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신은 하늘에 살고 있고,
땅으로 내려오려면 키 큰 나무를 이용하는 것이 교통상 편리할 뿐 아니라, 숲은 원만하고
깨끗한 것이므로, 신을 모시는 데에는 가장 알맞은
환경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뜻에서 왕가숲이 선택된 것이다.
왕가숲은 처음에는 일종의 종교림(宗敎林)이었고, 후에
수리(水利)를 위해서 기능을 발휘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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