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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상산 안국사 사고 (귀중한 국사보존 전북 기념물 제88호 지정) (전북 무주군))

구염둥이 2015. 8. 21. 13:58

안국사 사고 전북제(88호) 이야기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6년(1614)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밖에서 찰칵한 이야기

 

 

 

 

 

사고지 앞의 산정호수는 인공호수다

850m 산 정상에 이런 호수가 있다니 아주 특별해 보였다

 

 

 

 

 

 

무주엔 볼거리가 많은것 같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때 서울의 춘추관을 비롯한 전국의 사고가 불에 탄 후,

춘추관을 제외한 정족산, 태백산, 묘향산, 오대산 등에 새로운 사고를 설치하게 되었으나,

당시 우리나라 북방이 위험하여 광해 6년(1614)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무주의 적상산에 실록전을

 세우고 묘향산의 실록을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인조 19년(1641) 선원각을 세워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을 보관하게 되었다.

그 후 일본에 의해 사고가 폐지될 때까지 300여 년간 국가의 귀중한 국사를 보존했던

 우리나라 5대 사고중 하나였다.

현재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사고터는 안타깝게도 적상산 양수발전소댐을 건설하면서 상부댐 안에

수몰되어 안국사와 함께 저수지 윗쪽으로 이전하였다.

 적상산은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절벽 주변에 유난히도 빨간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철이면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듯 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에는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축성을 건의하여,

 그 계기로 축성하였다는 적상산성이 있다.

그리고 고려 충렬왕3년(1227년) 월인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안국사 및

사고를 지키기 위한 호국사찰로서 조선시대 인조 21년(1643년)에 창건한 호국사터가 있다.

 현재의 안국사는 이 호국사터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구석구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