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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시인 대성중학교* 생가 * 생가을 둘러볼땐 숙연한 마음 (용정명동)

구염둥이 2013. 8. 16. 13:44

이번 백두산 여행을 하면서 많은걸 느끼고 보고 왓다

특히 윤동주 시인의 생가와 대성중학교를 방문할때는 마음이 아팠다

 

조선족의 국적은 중국이다.

윤동주는 룽징에서 태어났지만 모든 작품을 한글로 썼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그가 평양 숭실중학교에 다니던 시기와 서울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기, 일본 교토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기에 썼다.

윤동주의 육촌 동생으로 매년 이곳을 찾는다는

가수 윤형주씨는 "윤동주 시인의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며,

북간도로 이주한 것일 뿐 이민을 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 국적의 시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 어르신들이 알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실 일"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연세대 사회학과 류석춘 교수는 "'패, 경, 옥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라는 구절이 있는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인은 중국 국적의 소녀들을 '이국 소녀'라고 일컫는 등 자신을 중국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다"며 "

도리어 한글로만 시를 쓰는 등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윤동주시인 생가의 한적한 이야기

 

 

윤동주(尹東柱, 1917년 ~ 1945년)는 한국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입니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파평(坡平)입니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했으며,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하였습니다.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합니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습니다.

ㅡ옮겨온글 ㅡ

 

 

 

새로복원된 윤동주시인 생가 담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돌담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에서

 

윤동주시인 생가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이야기

 

 

 

윤동주시 가을밤 이야기

넘 더워서 가을이 기다려지는 우리들 이야기

 

 

윤동주시 버선본 이야기

 

 

윤동주시비 참새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로 들어가는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명동이야기

 

 

 

윤동주시인 묘비 이야기

근데 잡초가 많네요

뒤론 옥수수밭 이야기

 

 

대성중학교 이야기

 

 

용정중학교 (구 대성중학교)

민족시인 윤동주 시인이 다니셨던 학교입니다

현제는 용정제일중학교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실제로 학생들이 이 곳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학교내 구 건물 이층에는 전시관이 꾸며져 있습니다.

 

 

 

 

윤동주시인 대성중학교 이야기

 

 

 

 

 

 

 

 

 

 

 

대성중학교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이야기

 

 

함께한 회원들과 이증샷도 남기는이야기

정다운 이야기

 

윤동주시 유언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이야기 

 윤동주시인 생가 이야기

 

 

윤동주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尹東柱, 1917년 12월 30일 ~ 1945년 2월 16일 는 한국독립운동가, 시인 작가이다.

아명은 윤해환(尹海煥), 본관은 평(坡平)이다.

중화민국 지린 성에서 출생, 연희전문교를 졸업하였으며, 숭실중학교 때 처음 시작을 발표하였고,

1939년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 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유학 후 도시샤 대학 재학 중, 1943년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福岡刑務所)에 투옥,

100여 편의 시를 남기고 27세의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요절하였다.

그의 사후 일본군에 의한 마루타, 생체실험설이 제기되었으나 불확실하다.

사후에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었다.

일본식 창씨개명은 히라누마 도오슈(平沼東柱)이다.

 

일제 강점기 후반의 양심적 지식인의 한사람으로 인정받았으며,

그의 시는 일제조선총독부에 대한 비판과 자아성찰 등을 소재로 하였다.

그의 친구이자 사촌인 송몽규 역시 독립운동에 가담하려다가 체포되어 일제의 생체 실험 대상자로 분류되어

처형당하였다. 1990년 대 후반 이후 그의 창씨개명 '히라누마'가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송몽규는 고종 사촌이었고, 가수 윤형주는 6촌 재종형제간이기도 하다.

 

윤동주의 시집은 사후에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서시(序詩)》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 유고시집에 실려 있다. 1948년의 초간본은 31편이 수록되었으나,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시를 추가하여 1976년 3판에서는 모두 116편이 실리게 되었다.

   ㅡㅡ옮겨온글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