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트레킹·여행

엄마품같다는 모악산 정상표지석이 송전탑옥상 올라가는옆에있다 (김제모악산793.5m)

구염둥이 2014. 3. 5. 12:19

모악산 이야기

 

김제는 부산에서 갈려면 멀다

4시간이 걸리는것 같다

차에 앉아있으려니 허리가 뻐근하다

11시까지 도착해야 된다고 한번만 휴게소에 들렸다

ㅋㅋㅋ 어쩌라고 ㅡㅡ

봄 기운을 창밖으로 느끼며 잠간씩 졸음에 잠도 청해본다

그렁저렁하다 보니 도착이다

차안에서 간단하게 아침은 해결했지만 허기가 지면 올라가기 힘들다

요즘 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공드린다고 찾는다

그래서 휴게소마다 더 분비는것 같다

준비를하고 재촉하는 대장님들의 성화에 숨가프다

이제는 겨울옷이 넘 덥다

가볍게 입어야 산행하기 좋을것 같다

 

산행지 : 전북 김제 모악산 (793.5m)

산행코스 : 모악산관리소 ㅡ대원사 ㅡ수왕사 ㅡ모악산 ㅡ장근재 ㅡ금산사주차장

                  약 9km/ 4시간30분 소요

 

 

 

여기서부터 시작한 모악산 산행

 

모악산은 언제 보아도 어머니 같이 푸근하다.

거기에다 우주만물을 아우르는 심오한 철학까지 스며있다.

그래서 모악산 가는 길은 편안하면서도 삶의 깊이를 천착할 수 있는 진한 멋이 배어있다. -옮겨온글 -

 

 

 

 대원사절입구를 지나가본 이야기

 우린 모악산을 바삐 올라가야 합니다

 

 

 

 

봄을 기다리며 그 추운 겨울을 잘 견디여 낸 나무들

곳 많은 이야기를 담고 피여나겠지요

 

 

송전탑때문에 철조망까지 ㅡㅡ옆을 지나가는 산님들 ㅡㅡ

 

 

 

표지석을 만나러 올라가는 등산객님들 ㅡㅡ 대단들 하지요

 

 송전탑으로 인해서 숨어있는듯 안보이는 표지석

 꼭 만나야 겠지요 ㅡ793.5m 모악산은 도립공원이래요

 

 

 이곳에서바라보는 산 아래의 이야기들은 샐수 없이 많겠지요

 약간의 미세먼지인듯 뿌엿게 잘 안보이지만 올라오길 잘 한것 같다는 이야기

 첨엔 표지석이 없는줄 알고 그냥 갈려고 했으니까요 ,,

 

 

대적광전의 고풍스러움 뒤에서는 백제계 삼층석탑과 사자상 등위에 세워진 남근석이 마을을 내려보고 있다.

"기름기 번지르르한 다른 절과는 달리 가난하고 예스러운 기운이 풍겨서 좋다."

"너무 친근하고, 소박해서 좋다."

귀신사 돌계단을 내려오면서 이심전심으로 이런 얘기가 오간다.

금산사, 귀신사 등 여러 절을 품고 있는 모악산은 계룡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본거지로 손꼽힌다.

대표적 민족종교인 증산교의 교주 강증산이 득도하여 증산교를 창시한 곳도 금산사 아래 구리골(銅谷)이다.

동학혁명이 실패한 이후 어디에도 마음을 둘 데가 없었던 민중들에게 증산교는 무서운 속도로 전파되었다.

금산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금평저수지 근처에 증산법종교 교당이 있고,

교당 안 영대라는 건물에 강증산 부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여기에서 금산사 쪽으로 약간 올라가 저수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왼쪽 동곡마을 가는 길로 돌아 700m 가량 들어가면

강증산이 도통한 후 9년 동안 머물며 민중을 교화했던 동곡약방이 있다.

아름다운 세상 꿈꾸는 미륵불

금산사 가는 길에는 늙은 벚나무와 수백 년 묵은 물참나무, 팽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조용히 걸으면서 미륵불을 만날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한다.

포장된 길옆으로 야생화를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만들어놓아 정겹기도 하다.

우리는 일주문과 금강문, 천왕문, 보제루를 통과하면서 세속의 때를 한 가닥씩 벗고 나서야 참배공간에 도착한다.

너른 절 마당을 가운데 두고 보제루와 대적광전이 마주보고, 동쪽에는 국보 제62호인 미륵전이,

서쪽에는 대장전 등의 건물이 ?자형 구조를 이루고 있다.

 

제일 먼저 마음이 가는 곳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을 모신 미륵전이다.

미륵불은 석가가 입적한 지 56억 7천만년 후에 석가가 구제하지 못한 중생을 마저 구제하기 위하여 오는 부처(後世佛)이다.

삼국시대 말기 백제에서 크게 일어나 현세에 행복하지 못해 새 세상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신앙으로서

지금까지도 이어져오는 미륵신앙, 그 미륵신앙의 본거지가 이곳 금산사다.

미륵전에 모셔진 미륵불 앞에 선다.

11.89m 높이의 웅장한 미륵입상이 아름다운 세상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세상의 모태인 자연은 갈수록

황폐화되어 가는 현실을 보면 정말로 아름다운 세상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길 때도 많다.

미륵부처는 나에게 그럴수록 너 자신부터라도 마음을 다스리고 소박하게 살아가라는 충고를 하는 것 같다.

미륵불 옆으로 계단을 올라가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석종형 부도와 오층석탑이 절 마당을 내려보고 있다.

절 마당 곳곳에는 석등과 육각다층석탑, 석련대 같은 석물들이 금산사의 아련한 역사를 말해준다.

금산사 미륵불을 뒤로하고 모악산 정상을 향하여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모악산 정상의 모습이 눈앞에 들어온다.

길 오른쪽의 과수원에는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금산사를 출발한지 얼마 안되어 계곡을 옆에 낀 숲길이 이어진다.

밤나무, 도토리나무에서 떨어진 밤과 도토리를 주어먹는 다람쥐의 몸놀림이 귀엽다.

 

심원암으로 가는 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모악정으로 방향을 잡는다.

계곡 옆에 조용하게 자리잡은 모악정은 주위의 숲, 계곡들과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난간 안쪽의 길다란 나무에 걸터앉으니 골바람이 서늘하게 불어온다.

계곡의 물소리도 그지없이 시원하다.

저 멀리 살포시 내민 푸른 하늘이 호방할 수 없는 계곡의 답답함을 덜어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모악정에서 장근재 쪽으로 가는 길을 버리고 헬기장으로 연결되는 능선 길을 택한다.

모악정 앞의 널따란 길을 벗어나자 곧바로 돌계단과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길이 기다리고 있다.

300m쯤 되는 가파른 길을 벗어나니 경사가 완만해진다.

길옆으로는 소나무, 굴참나무, 도토리나무 등이 우거져 있다.

8부 능선 근처에는 그리 크지 않은 바위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그 동안 보여준 육산의 모습에서 약간의 변화를 준다.

이러한 둥그런 바위지대를 지나니 길가에 평평한 바위가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신선들이 놀았다는 신선대다.

 

동쪽 대원사 밑에 위치한 선녀폭포에서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하늘나라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긴 후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이곳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어울려 놀았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오늘은 우리 일행이 선남과 선녀가 되기로 한다.

선남과 선녀들은 먼저 신선대 위에 편한 자세로 앉는다.

그리고 주위의 산세를 둘러본다.

건너편 위로 정상이 보이고 정상에서 장근재 쪽으로 부드러운 능선이 평화롭게 이어진다.

산비탈에는 울창한 숲이 조성되어 포근함을 더해 준다.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북쪽 중인리 쪽으로 연결되는 능선에 도착한다.

지척으로 정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는 송신소가 자리잡고 있어 송신소에서 설치해 놓은 철조망 앞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여기에서 가없이 펼쳐지는 망망한 평야, 김만평야를 바라본다.

이곳 사람들에게 김만평야는 '징게맹게 외배미들'이다. '

외배미'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툭 트였다는 데서 온 말이니 '

김제·만경의 너른 들판'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넓은 들 가운데 793m의 모악산이 우뚝 솟았으니 큰산일 수밖에.

모악산과 금산사는 원래 큰산을 뜻하는 고어 엄뫼, 큼뫼에서 비롯되었다.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은 어머니(母)의 뫼라는 뜻의 모악으로, 큼은 금(金)으로, 뫼는 산(山)으로 적게 되었다.

서쪽으로 김만평야가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

땅과 하늘이 닿아 이룬 지평선은 '징게 맹게'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가없는 평야와 어울린 모악산, 이는 우뚝 솟은 산들이 자리잡고 그 사이에 들판이 조성된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풍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상을 기준으로 서쪽은 김제시가, 북쪽은 전주시, 그리고 동쪽에는 완주군이 자리잡고 있다.

김제에는 김제(金堤)라는 이름부터 시작하여 금구, 금평, 금산, 금천 등 쇠 금(金)자가 들어간 이름이 유난히 많다.

옛날 백제 때부터 김제 땅에서는 사금이 많이 생산되어 이러한 지명이 붙었다.

정상 동쪽으로 조금 돌아가니 여기에서는 전주시내의 아파트들이 한 눈에 들어오고

구이 저수지와 경각산이 바로 앞에 와 있다.

서쪽은 지평선이 바라보인데 비하여 동쪽은 운장산, 연석산, 만덕산 등 완주·진안·무주·장수 쪽의 산들이 첩첩하다.

멀리 덕유산 줄기가 아득하다.

 

동쪽의 첩첩한 산군이 가슴깊이 다가오는 정상 동쪽에는 구이저수지 방면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금산사쪽 등산로에 비하여 훨씬 많다.

전주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수왕사 입구에서 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다.

절벽 아래에 보금자리처럼 자리잡은 수왕사는 동쪽으로 구이저수지를 비롯하여

첩첩한 산줄기들을 바라볼 수 있는 빼어난 조망처다.

 

수왕사에서 20분쯤 내려오니 대원사 바로 옆 느티나무 숲이 우리를 붙잡는다.

절 마당에 들어서니 모악산 정상이 올려다 보이고 느티나무에서는 몇 마리의 새들이 사이좋게 놀고 있다.

강증산은 갑오년 동학혁명 실패이후 풀벌레만도 못하게 죽임을 당하고 강탈당했던

우리 민중의 후천개벽(後天開闢)을 염원하며 먼저 스스로 크게 깨우치기 위하여 이곳 대원사에서

수도하여 득도하였다. 모악산을 쳐다본다.

어머니처럼 한없이 포근하다. -옮겨온글-

 

고은의 시 '모악산'을 음미한다 

내 고장 모악산은 산이 아니외다

어머니외다

저 혼자 떨쳐 높지 않고

험하지 않고

먼데 사람들마저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자식으로 품에 안은 어머니외다.

여기 고스락 정상에 올라

거룩한 숨 내쉬며

저 아래 바람진 골마다

온갖 풀과 나무 어진 짐승들 한 핏줄이외다

세세생생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도 한 핏줄이외다

이다지도 이다지도

내 고장 모악산은 천년의 사랑이외다.

오 내 마음 여기 두어  -옮겨온글 -

 

 

 모르고 지나칠수 있는 표지석 793.5m여기에 있다는 이야기

 많은 계단을 올라와야 겨우 만나는 표지석 아마 우리나라의 유일한 하나밖에 없는

 표지석이 아닐까 싶네요

 우하하

 

 

 

 전주방속국 송전탑 옥상인데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팀도 있다는 이야기

 모악산 정상표지석은 없는듯 있습니다

 ㅎㅎㅎ 옥상으로 올라오는 계단옆에 숨어있다는 이야기

 올라와봐야 만날수 있는표지석 793.5m

 

 

 

  이제 금산사쪽으로 내려가는 이야기

 자구만 산을 올라가는게 겁도나고 힘이 부족한것같아ㅡㅡ 숨가프다

 

 

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나주는듯 조용한 숲

 

 

 

 모악산을 내려와 금산사입구로 가는 이야기

 모악산도 악자라서 좀 힘든가요 ㅡㅡㅎㅎㅡㅡ모악산 793.5m

 

 

 모악산 이야기

 

 

      

 

 모악산 아래의 봄 소식

 곳 터질것 같은 꽃망울 이뽀요ㅡㅡ모악산의 봄 소식

 

 

 금산사절 들어가진 못하고 옆으로 지나가면서 눈에만 담고온 이야기

 시간이 없다고 재촉해서요ㅡㅡ산악회따라오면 항상 시간에 쫒겨 제대로 구경도 못하는 이야기

 그래서 넘 아쉬운 맘

 

 

 

 

 

 

바라만 보고온 금산사절 언제 함 가볼맘으로 지나온 이야기

 

 

 금산사 이야기

 

 

 

 

 

 

 

 

 모악산 산행은 봄날같지만 좀 차가운 날씨에 포근함을 느끼며 잘 하고 왔습니다

 어머니 품같은 모악산 이라서인지 포근함을 느끼고 온 이야기

 

 

 늘 함께해서 행복해요 ㅡㅡ늘 여러분 블방님들!!

 감사합니다

 많이 사랑주세요ㅡㅡ

 사랑해

 

 

모악산 793.5m 이야기

 

전북 김제ㆍ전주시와 완주군에 위치한 모악산은 높고 큰 산을 뜻하는 '엄뫼'에서 비롯됐다고 전해진다.

순수한 우리말이던 산 이름은 한자가 들어오면서 바뀌었다

금산사지(金山寺誌)에는 '엄뫼'를 어머니 산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母岳)'이라 적었다고 했다.

모악산
꼭대기에 흡사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 모습 같은 큰 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는 얘기도 전한다.

어떤 이는 모악산이 한반도의 자궁 자리에 해당한다고 해석한다.

모악산은 북한 김일성의 시조묘 논란으로도 화제가 됐다.

전주 김씨 시조 김태서가 모악산 명당 터에 묘를 썼기에
김일성의 운(運)이 좋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모악산은 기(氣)가 세고 영험(靈驗)이 크다는 게 속설이다.

그래서인가. 모악산은
전북권의 유수한 산행길 중 백미로 꼽힌다.

기(氣)를 품고 있으면서도 험하지도 그렇다고 만만치도 않다.

천년 고도 전주와 호남평야를 품에 안고 있다.

마름모꼴로 물ㆍ불ㆍ바람 등 삼재(三災)를 막아주는 형세다.

연중 이곳을 다녀가는 등산객은 100만여명에 이른다.

이는 전북 도민의 절반 이상이 다녀간 것으로 주 이용층인 전주 시민은 전체가 연중 두번쯤은 찾았다는 얘기다.
모악산은 노령산맥의 중봉이다.

금만평야의 동쪽에 우뚝 솟아 평야와 산지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금만평야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대대로 우리 민족을 먹여 살린 곡창지대다.

이처럼 넓은 들 한쪽에 해발 793m로 우뚝 솟았으니 일대에서는 대산일 수밖에 없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관개시설의 대명사로 꼽혀 온 벽골제의 물도 그 근원을 모악산에 두고 있다.

너른 곡창을 일컫는 '징게맹경'의 젖줄은 시발이 모악산인 셈이다.

모악산을 중심으로 불교의 미륵사상이 개화한 것도 주목된다.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도 금산사에 유폐된 견훤을 빌미로 후백제를 점령했다.

동학혁명의 기치를 든 전봉준 역시 모악산이 길러낸 인물이다.

모악산 일대를 신흥종교의 메카로 만든 강증산(姜甑山)은 이산 저산 헤매다가

모악산에 이르러 천지의 대도를 깨우쳤다고 한다.

모악산에는 증산교 본부 등 각종 신흥종교들이 집산해 현존하는

대원ㆍ귀신ㆍ수왕사 등 사찰 외에도 한 때 8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

산 아래 금산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예 모악산의 원래 이름은 금산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

엄뫼'는 '큰 뫼'라고도 불렸는데 큼을 음역하고, 뫼를 의역해서 금산(金山)이라고 칭했다고도 전해진다. -옮겨온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