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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선운사는 지금 빨간융단이 깔려있는듯! 꽃무릇꽃이절정 아름답다!! (전북 고창군)

구염둥이 2016. 9. 26. 10:43

꽃무릇 이야

 

명절 보내고 첨 나들이 트레킹이다

들판엔 어느새 파란색이 노란색으로 물들어가고

내마음도 가을빛에 물들어가 본다

고창의 선운사 꽃무릇(석산)꽃을 만나러 시원하게 달린다

좋다

 가을 예쁘다

                글구 설렌다.............!!

 

 

 

선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本寺)이다.

창건에 대해서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577년(위덕왕 24)에 백제의 고승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1707년(숙종 33)에 쓰여진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兜率山禪雲寺創修勝蹟記)」는

전자의 설을 취하고 있는데,

 대략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를 기록하고 있다.

 

신라의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날밤에 좌변굴(左邊窟:진흥굴, 도솔암 밑에 있다.)에서

자다가 꿈속에서 미륵삼존불(彌勒三尊佛)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重愛寺)를 창건하였으니 이것이 이 절의 시초라고 하였다.

 

이 창건설화는 진흥왕이 만년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했다고 하는

 사실에 따라 형성되었겠지만,

 당시에 이 지역이 신라땅에 속했을까 하는 문제가 있다.

 

또 검단의 창건설을 보면 위덕왕 24년은 진흥왕이 왕위에서 물러난지 2년 뒤에 해당한다.

그런데 검단과 해구(海口)에 있는 검단리(檢旦里)와 관련된 설화가 있다.

즉, 옛날에 검단선사가 바닷가의 사람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쳤기에 해안

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하였다는 것이다.

 

두 설은 모두 설화이기에 어느 것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그 뒤에 검단선사가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뒤 1354년(공민왕 3)에 효정(孝正)이 중수하였고,

1472년(성종 3)부터 10여년 동안 극유(克乳)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극유는 1472년에 이 절에 이르러 뜰에 구층석탑만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중창을 발원하였다.

 

그는 이듬해 2월 제자 종념(終念)과 함께 상경하여

성종의 작은아버지 덕원군(德源君)이 쓴 원문(願文)을 얻어 중창을 시작하였다.

 그 해 여름에 나주 보을정도(寶乙丁島)의 재목

 1,000여 그루를 3척의 배에 싣고 왔으며,

1473년 봄부터 가을까지 기와 20여 가마를 구웠다.

 

그리하여 1474년에는 2층의 장륙전(丈六殿)과 관음전(觀音殿)을 짓고,

1475년 봄에는 선왕선가(先王仙駕)를 위한 수륙재(水陸齋)를 크게 열었다.

 

1476년에는 천불대광명전(千佛大光明殿)을 조성하였고,

 1481년에는 모든 건물이 단청을 마쳤을 뿐만 아니라,

 지장전(地藏殿)·동상실(東上室)·금당(金堂)·능인전(能仁殿) 등을 짓고,

또한 영산회(靈山會) 등 53불회탱(五十三佛會幀)을 조성하였다.

 

이와 같이 10여 년에 걸친 극유의 중창불사로 인하여 선암사는 옛 모습을 되찾았는데,

건물이 189채나 되는 웅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100여 년이 지난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 때에 어실(御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부터 1609년에 이르는 2년 동안

 승려 수십 명이 선방(禪房) 한두 개 소를 먼저 지은 뒤 몇 년 동안에 법당 3칸을 지었다.

1613년(광해군 5) 봄에 태수 송석조(宋碩祚)가 일관(一寬)에게 중창을 부탁하자

일관은 원준(元俊)과 더불어 수많은 집을 돌며 시주를 모았다.

 

그리고 어실을 빙자하여 고창 문수리에서 재목을 얻어 먼저 보전(寶殿) 5칸을 세운 다음,

 상·하 누각과 동·서 양실(兩室)을 건립하였다.

 이때의 중창은 6년 만인 1619년에 끝을 맺었다.

 

그 뒤 1707년(숙종 33)에 이르기까지 일관·원준 등의 선사들이

서로 계승하여 거듭 건물을 세우고 화상을 조성하는 등의 불사를 계속하였다.

1698년에 김우항(金宇杭)이 쓴 「선운사중신기(禪雲寺重新記)」에는 중수에 참여하고

 당시 선운사에 살고 있던 대중 260여 명을 기록해두고 있다.

 

이 기록은 당시의 사찰규모와 조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것이다.

1707년에는 현익(玄益)이 「도솔산선운사창수승적기」를 지었다.

1839년(헌종 5) 비로 인해 법당 오른쪽 2칸이 무너졌다.

이에 찬성(贊誠)·의홍(義弘)·성찬(誠贊) 등이 법당과 향운전(香雲殿)을 수리하고

 정문(正門)의 기와를 갈았는데, 1840년 가을에 중수를 마쳤다.

 

이 때의 중수내역을 기정진(奇正鎭)이

「무장현선운사대법당사적기 茂長縣禪雲寺大法堂事蹟記」에 기록하여 남겼다.

1965년 팔상전을 중수하였고,

197년 성보전시관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선운사 사적에는 17세기부터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의 건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전각요사창건연대방명열목(殿閣寮舍創建年代芳名列目)」

이라는 제목 아래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고창군청 문화관광과(063-560-2234)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아름답다

          멋지다 황홀하기까지..........!!

 

 

 

가는곳마다 꽃무릇으로 물들여진 선운산

선운사

 

꽃무릇(=석산)은 수선화과 Lycoris속에 속하는 알뿌리식물

 

 

 

가뭄으로 꽃은 약하고 키도 작지만 아름다운 광경은 그림이다

많은 사람들로 제데로 움직일수 조차 없는 선운사

도솔암까지만 다녀온 이야기

 

 

 

 

꽃이야기는 우리를 즐겁게 해주고.........

 

 

 

꽃무릇 (석산)

 

석산은 꽃대의 높이가 30~50㎝ 정도로 자라며, 반그늘이나 양지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물기가 많은 곳에서도 잘 자라는 품종이다.

피처럼 붉은 빛깔의 꽃과 달걀 모양의 비늘줄기가 가진 독성 탓에 ‘죽음의 꽃’으로 여겨져 왔는데,

그래서인지 꽃말도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슬픈 추억’이다.

잎은 넓은 선 모양이며 짙은 녹색으로 광택이 난다.

 잎의 길이는 30~40㎝, 폭이 1.5㎝ 정도이며, 10월경 꽃이 시들면

알뿌리에서 새잎이 올라온다.

 

 

 

 

 

작년엔 이곳에 많은 꽃무릇이 만발했었는데

수요가 적어진것 같다

 

 

 

 

 

우리 사랑이도 따라간 이야기

 

 

 

 

마애불 이야기

 

동불암(東佛庵) 마애불상(磨崖佛像)은 높이 13m, 너비 3m이다는 이야기

 

 

 

 

 

 

 

 

 

 

잎이 지고 난 후 꽃대가 올라 꽃이 피기에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한다 해서

서로 사모하는 마음을 가진 "상사화"라고도 합니다.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인 꽃무릇은 석산(石蒜)이라고도 하며

 꽃말은 ‘슬픈 추억’으로 스님을 연모하던

속세의 여인이 맺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시름시름 앓다 죽은 자리에 피었다는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다는 이야기

 

꽃말: 슬픈추억

 

 

 

 

 

 

 

 

 

천연기념물 제354호. 높이 23m이며,

가슴높이둘레가 2.95m로, 지상 2.2m 높이에서 2개로 갈라져서 자란다.

수관폭은 동서가 16.8m이고 남북이 16.7m이며 수령은 600년이라고 보고 있으나

단순한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외관으로는 소나무같이 생겼으나, 지상 40㎝ 정도에서 갈라져서 자라는 동안 높이

 2.2m쯤에서 다시 합쳐진 것으로 반송(盤松)에 해당한다.

그러나 고창 주민들이 장사송(長沙松)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호하게 됨으로써 장사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선운사에서 도솔암으로 가는 길가에 있는 진흥굴 앞에서 자란다

 

 

600년된 장사송 이야기

 

 

걷기 좋은 편안한 숲길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창 번창하던 시절에는

 89개의 암자를 거느렸고,

3천여명의 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제일의 대찰이었다고 한다

 

 

 

 

 

 

 

 

 

 

 

 

 

 

 

 

 

 

 

 

 

송악^^*

 

가지에서 공기뿌리가 나와 암석이나 다른 나무에 붙어 자란다.

잎은 두터운 가죽질로 어긋나는데 윤기가 나는 짙은 녹색이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10월경에 녹황색의 작은 꽃들이 몇 개씩

모여 산형(傘形)꽃차례를 이루며 핀다.

 

 열매는 둥글고 이듬해 5월경에 검게 익는다.

영어 이름으로는 재퍼니스 아이비(Japanese Ivy)인데 서양에서 아이비라고 하는

 잉글리시아이비(Hedera helix)와 잎이 비슷하다.

그러나 아이비라고 불리는 또 다른 식물인

담쟁이덩굴(Parthenocissus tricuspidata)과는 전혀 다르다.

 

남부지방에서는 소가 뜯어먹어 소밥이라고도 한다.

 잎과 줄기는 지혈작용과 경련을 멈추게 하는 작용 등이 있어 한방에서 사용하며,

상록의 잎은 땅을 덮는 지피식물(地被植物)로 유용하다.

 지지하는 물체에 따라 독특한 모양을 만들 수 있어 관상수로도 이용된다.

 봄에 꺾꽂이를 하거나 5월에 씨를 채취하여 번식시키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등의 남부지방과 따뜻한 난류대를 따라

인천 앞바다와 울릉도 등에 분포하고,

 

송악(松萼)은 두릅나뭇과의 덩굴성 상록수이다.

대부분의 덩굴손은 식물의 겨드랑이나 줄기 끝에서 나와서 나무나 풀들을

 칭칭 감고 올라가는 역할을 하지만 송악의 덩굴손은 다소 차별된다.

송악의 덩굴손은 칭칭 감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특이하게 '공기뿌리(공중뿌리, 기근氣根))'라는 게 줄기에서

 나와서 나무를 단단히 부여잡으면서 한발 한발 올라간다.

마치 암벽 등반하듯이 차례차례 나무를 타고 올라간다.

공기뿌리가 올라갈 대상을 잡았으면

이미 그 나무는 자신이 피워야 할 잎이며 꽃이며 모두 포기해야 한다.

송악의 늘 푸른 잎사귀가 그 나무를 완전히 덮어버리기 때문인데

 송악이 올라탄다고 해서 숙주인 나무가 죽는 건 아니다.

고창 선운사를 방문해보면 입구 주차장 왼쪽 계곡 쪽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송악이 있다. [다음팁]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의 송악은

천연기념물 제367호로

지정되어 있다

 

멋지다

 

 

 

 

넘 이쁜 이야기

 

 

 

흙속에서 나오는 꽃무릇(석산)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 명소.

 

 

 

 

 

선운사뒤 동백숲 꽃무릇 이야기

 

 

 

넘 이쁜 꽃무릇 이야기

 

 

 

이렇게 많은 회원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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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청 문화관광과(063-560-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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