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트레킹·여행

국사암 둘러보니 비는 오지만 넘 좋드라!! (경남 하동군)

구염둥이 2017. 4. 13. 23:25

국사암 이야기

 

비가오는날 일정대로 국사암을 간다

섬진강 벚꽃을 차 안에서 보다 내려서 보다 하면서 국사암까지 갔다

그래야 불일암 불일폭포를 가니까

비가오니 우산을 쓰고 산행하긴 불편하고 위험도 했다

조심히 산행을 한다

 


 

 

 

 

 

 

 

 

국사암 평소엔  몰랐던곳..

 

 

 

국사암 들어가는길...이건 화장실이다

 

 

 

 

 

 

 

 

 

 

 

 

 

 

 

 

 

 

 

 

 

 

 

 

 

 

 

 

 

 

 

 

우린 인증샷도 해본다

 

 

 

 

 

 

 

불일암과 불일폭포로 가는길이다

 

 

 

 

 

 

 

 

 

 

 

 

 

 

 

 

 

 

 

 

 

 

 

 

논과 밭이였다고 한다는 이야기

 

 

이곳에서 거주도 했다고 한다

 

 

 

 

 

 

 

등산객들의 쉼터가 되여준곳..

깨끗하게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국사암 이야기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는 해인사의 말사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성왕 원년(839)에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진감혜소(眞鑑慧沼)가
이곳 두류산 중턱에 보월암을 창건(840)하였다.

그는 이곳에 머물면서 민애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민애왕이 그를 스승으로 봉하여
진감선사(眞鑑禪師)라고 하였기에

 

그가 머물던 암자를 국사암(國師庵)이라 칭하였다.

일찍이 의상의 제자 삼법(三法)이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에
“육조 혜능의 정상(頂相)을 모셔다가 삼신산(三神山)의 눈 쌓인

 계곡 위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고는 혜능의 머리를 취해 왔는데,
진감이 육조대사정상탑을 세워 그 안에 봉안하고 영당(影堂)에 모셨다.

 

이 탑 속에 봉안하고 있다는 정상은 남종선의 태두인 육조 혜능의 머리를
실제로 잘라와 모셨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선법 정신의 당체인 머리 부분을 해동 신라로 옮겨와 모심으로써

 이 땅의 선법이 그의 정수를 잇고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으로 이해된다.

 이 탑은 현재 운수리에 있는 쌍계사 선원의 금당에 봉안되어 있다.

 국사암에 관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전기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711년(숙종 37)에 의삼이 홍은·연민과 함께 1714년까지 전각을 짓고

 푸른 기와를 얹어 4존상을 봉안하였는데
이후에도 여러 차례 중창·중수하였다.

절의 목조여래좌상·석조석가여래좌상·석조미륵보살좌상·석조십칠나한좌상·

석조제화갈라보살좌상 등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이다.

 

최근인 1983년에 문수전·인법당 등을 새로 중건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별한 문화재는 없다. 절 문 앞에는 혜소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천 년이 넘는 느릅나무로 자라

사천왕수(四天王樹)로 불리고 있다[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