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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김영랑생가뒤 & 모란공원에 올라가보면 바다가 보이고 가을도 한눈에 쏙!(전남 강진군)

구염둥이 2017. 10. 30. 23:04

김영랑 생가 이야기

 

김영랑 생가 둘러본 이야기

 

 

 

김영랑^^

 

1903년 강진읍 남성리에서 태어난 영랑은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나온 후

서울로 올라와 서울 기독청년 회관에서 영어를 배우고 휘문의숙에 입학한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 만세 운동을 모의하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일경에 체포되어 6 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고,

 

 1920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편입하나,

 1923년 동경 대지진으로 말미암아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고향의 생가로 돌아온 영랑은 민족 수난의 한과 비애를 달래기 위해 대나무숲에 싸인 생가의 사랑에서

손수 북을 치면서 시를 읊었다

 

 

마침내 영랑의 서정시가 영롱한 광채를 발하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30년 박용철, 정지용, 이하윤, 정인보 등이

 동인이 되어 내놓은 <시문학>에서이다.

그리고 1935년 박용철의 힘으로 시문학사에서 <영랑시집>이 발간된다.

그의 유명한 시<모란이피기까지>도이시집에수록되어있다.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최남선, 이광수, 노천명, 서정주 등이 일제에 꺾여나갈 때

영랑은 김정한처럼 붓을 놓고 지조를 지켰다.

 

광복을 맞은 영랑은 우익청년운동에 정열을 쏟았으며

1949년에는 한때 공보처 출판국장의 관리직을 맞기도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서울을 벗어나지 못했던 그는

 지하 생활을 하다가 서울이 수복된 9월 28일 포탄의 파편에 부상을 입고 이튿날 운명하였다 [다음팁]

 

 

 

기영랑 생가 이야기

 

 

 

 

 

 

 

생가 뒤로 모란공원이 있다

우선 공원으로 가본다

 

 

 

 

 

 

 

 

 

 

 

 

 

 

 

 

 

 

 

 

 

 

 

 

 

 

 

 

 

 

 

 

 

 

 

 

 

 

 

 

 

 

 

 

 

 

 

 

 

 

 

 

 

 

 

 

 

 

 

 

 

 

 

 

 

 

 

 

 

 

 

 

 

 

 

 

 

 

 

 

 

 

 

 

 

 

 

 

 

 

 

 

 

 

 

 

 

 

 

 

 

 

 

 

 

 

 

 

 

 

 

 

 

 

 

 

김영랑(金永郞, 1903~1950)


생애 1903년 1월 16일 ~ 1950년 9월 29일

출생 전라남도 강진 출생

분야 문학 작가


시인. 전남 강진 출생. 본명 윤식(允植). 1930년 박용철, 정지용 등과 함께 “시 문학”을

간행, 순수 서정시 운동을 주도하며

잘 다듬어진 언어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데 힘썼다.

시집으로 “영랑 시집”(1935), “영랑 시선”(1939)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