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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둘러보니 더운줄도 모르고! 감탄사만 절로나와!! (충북 보은군)

구염둥이 2016. 8. 27. 09:29

속리산 이야기

 

여름의 끝자락!

참 물러가기 싫은가보다

이제는 미련없이 가도 되겠는데

아쉬움이 남는가 보다

자연의 섭리는 받아들일 수 밖에~~

하늘은 높아지고 들판에 벼 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우리들 마음은 설레인다

두 팔벌려 하늘을 안아보니 손긑이 시원하다

가을이 왔다

................................................!!

 

 

속리산 법주사!!

 

 

조선 중기의 시인 백호(白湖) 임제(林悌)가 속리산을 보고

남긴 시의 한 구절이다.

 속리산은 맑고 청량한 산이다.

그 옛날 이곳을 찾았던 백호의 시에 묘사된 것처럼 속리산은

 속세를 떠난 피안(彼岸)의 세계다.

 

구름 속에 갈무리되어 마치 하늘나라처럼

신비스러운 유토피아, 곧 극락의 세계가 속리산이다.

속리산 문장대(文藏臺)의 옛 이름은

구름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라는

 뜻의 운장대(雲藏臺)였다

 

 

세 번 오르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속리산 문장대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속리산은 동서로 이어지는 높은 능선을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는

겹겹이 산줄기가 뻗어 있고

 그 사이로 여러 개의 계곡이 깊은 골을 이루어 신령스러운

 명산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산봉우리와 능선 곳곳에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암괴석들은 속리산의 모습을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들고 있다.

 

 특히 문장대에는 큰 바위가 산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데 마치

그 모습이 하늘에 맞닿아 있는 것과 같이

매우 기묘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문장대는 바위 꼭대기에 100여 명이 함께 올라설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한다[우리명승기행].

 

 

 

 

                              도는 떠나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도를 멀리했고
                              道不遠人人遠道
                              산은 세속을 떠나지 않았으나 세속이 산을 떠났도다
                              山非俗離俗離山 [우리명승기행]

 

 

 

 

 

법주사 들어가기전 인공 폭포의 시원한 물줄

한낮의 더위를 조금이나마 잊게주니 고마운이야기

 

 

 

 

 

변함없는 상가들

지금은 한가한 이야기

 

 

 

 

 

그늘이라 걷기 좋은 길

 

 

 

 

 

 

 

얼마나 가물었으면 이렇게 물이 없을까요??

 

 

 

 

 

 

대불상

 

 

 

 

 

 

목탑 팔상전 이야기

 

 

사천왕 석등

 

 

 

 

 

 

 

 

 

 

 

 

대웅전의 모습

 

 

 

 

 

 

 

 

 

 

 

 

 

 

속리산 법주사 이야기

법주사는 신라 성덕왕 때 중수되었고 지금 남아 있는 석물도 모두 이때 만들어졌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건물을 중수했으며

현존하는 목조건물은 모두 조선 후기에 조성되었다.

법주사 경내에는 유명한 법주사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 팔상전(국보 제55호),

석련지(국보 제64호),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대웅전(보물 제915호),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등이 있고,

 다수의 지정되지 않은 문화재를 비롯하여 주위에

크고 작은 암자가 위치해 있다

 

 

속리산과 법주사에는 많은 설화가 전해진다.

 이 중 조선의 7대 임금 세조와 관련된 설화가 으뜸이라 할 수 있다.

왕위를 찬탈한 후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인 세조는 깊은 마음의 병과

 몸에 생긴 피부병으로 고생했다.

 

심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 세조는 먼저 속리산으로 비접을 떠났다.

법주사 본찰에서 문장대로 가는 도중에 있는

복천암에서 세조는 두 가지 지병을 치료하고자 기도를 했다.

 

3일간 기도를 하고 신미대사로부터 3일 동안 설법을 들은 후

샘물을 마시고는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

그러나 몸의 피부병은 낫지 않아 다시 오대산 월정사로 가서

 병을 고쳤다고 한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103호인 ‘정이품송’은 비접행차와 관련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세조의 연(가마)이 이 소나무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늘어져 있어 “연 걸린다”고 하자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가 정이품 벼슬을 하사했다는 나무다.

 

그리고 외속리면 장재리에는 대궐터가 있는데

세조가 보은을 지나 속리산 쪽의 나지막한 고개에 올랐을 때

노승이 나타나 행궁을 지으라고 일러준 곳이라고 한다.

이밖에도 세조가 말을 갈아탄 말티 고개를 비롯해

 미륵댕이, 북바위, 목욕소, 은구석 등에도 왕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세조 32권에는

 세조가 1464년(세조 10) 오랫동안 비접을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설화는 장소의 가치를 더해준다.

속리산과 법주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화민족임을 의미하며,

 한반도의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속리산 법주사 일원’을 비롯해 ‘가야산 해인사 일원’ 등

사찰과 주변의 자연경승지를 포함하고 있는 유산이 다수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과거 ‘사적 및 명승’이었던 유산을 재분류하여

명승으로 지정한 것이다.

 

사적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사적과 함께 명승으로 중복하여

 지정하는 것은 사적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속리산 법주사 일원’의 명승 지정은 법주사와 같은 유명한 사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주변의 경승지를 조화롭게 가꾸어

 속리산을 국민이 더욱 즐겨 찾는

 장소로 친밀하게 만들고 있다.[우리명승기행]

 

늘 사랑 주신 블방님들!!

감사합니다

 

#나에일상 #걷고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