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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외양포 마을은 일제강점기의 흔적그대로 남아있어 (부산시 강서구)

구염둥이 2016. 11. 5. 11:53

양포 이야기

 

 

가덕도 외양포

가덕도 외양포(加德島 外洋浦)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 해군은

1905년 2월 22일 거제도 장문포에 진지를 구축하고,

일본군의 육군인 가덕도포대사령부는 1905년 4월 21일 편성하여,

 1905년 5월 7일에 외양포에 상륙을 하였다.

 

이전에 이미 가덕도수비대와 포대사령부의 구조물을 설치하기 위하여

많은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가덕도 포대사령부(본군)가 1905년 5월 7일에 가덕도 외양포에 상륙을 하였다.

 

 1905년 5월 27일 러시아 해군 사령관 "로제스트 벤스키"가 보유한 함선

 37척과 병사 3,000명을 공격하기 위하여 일본군 해군과 육군의 상당수가

 경남 거제, 경남 진해,

부산 가덕도에 주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외양포 마을에는 일본군 포병사령부의 헌병대가 사용하던

 건물, 화장실, 막사로 사용되던 곳, 일본군 관사 건물, 병원시설,

무기고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들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마을 주민의 말에 의하면, 외양포 마을에는 9개의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우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외양포 마을에 주둔한 가덕도수비대와 포병사령부의

 많은 수의 군인들이 주둔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곳을 출입하는 일본군의 선박이나 함선에도 많은 양의 식수를 공급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사령부발상지지(司令部發祥之地)"라고 쓰인 석물이 있는데,

 앞면에는 "司令部發祥之地. 明治三十八年 四月 二十一日 編成下令.

同年 五月七日外洋浦 上陸", 뒷면에는 "昭和十二年 六月 建之"라고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을 건립한 것은 1936년 6월에 가덕도 포대사령부의 상륙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외양포마을 입구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향토사학자가 현 위치로

옮겨서 설치를 하였다고 한다.

 

 일본군들은 연합군의 비행기 폭격에 대비하여 콘크리트 벽 위에 흙을 덮어

위장한 일본군포대 벙크(bunker), 옆에 가로로 보이는 시설물은 폭격에 의한

진동과 소음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만든 시설물이다.[문화관광국]

 

 

 

 

 

 

 

 

 

대항마을

 

 

 

 

 

 

 

 

 

 

 

 

 

 

발견한지 얼마 안된다고 하는 일본군이 사용한걸로 추정되는 화장실

 

 

 

 

 

가덕도 오양마을의 가을 이야기다

 

 

 이돌은 주민들이 버려져 빨래하는

돌이였는데 이쪽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

 

 

 

 

 

 

 

 

현재의 마을이 된 장병들의 주둔지에는

관사, 막사, 창고, 무기고 등이 있어,

해방 후 고향을 되찾은 주민들이 지금도 일제 강점기의 옛 모습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빼앗긴 들판에 건설된 군부대 건물을

 그 후손들이 되찾아서 쓰는 것이기에

 ‘적산 가옥이지만 적산이 아니라’는 주민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이다.

 

 

일본군 막사라고 한다

일본군이 먹고 자고한 이야기

 

 

 

 

 

 

 

 

 

 

 

 

 

 

저렇게 두가지 색으로 된 집은 두집이 산다는 이야기

 

 

 

 

 

 

 

일제가 일찍부터 외양포에 군사시설을 축조한 것은 이 일대의 전략적 가치 때문이다.

외양포가 있는 가덕도는 동쪽으로 대륙진출의 교두보이자 해양으로의

 관문인 부산항을 끼고 있다.

또한 서쪽으로는 일제가 구축한 군항인 진해항을 끼고 있어

부산항과 진해항을 외호하는 방어기지로서 적격이었다.

 

 이 점을 간파한 일제는 1904년 러일전쟁 직전 가덕도 남단에 위치한 외양포에

 상륙해서 러시아 북양함대가 대한해협을 지날 때 기습공격을

 가할 목적으로 포대진지를 설치했다.

 

이를 위해 주민들을 내쫓는 한편 토지를 강제로 매입해서

포대사령부실과 부속시설, 포대진지 등을 설치했다.

이후 일제 패망 대까지 수차례에 걸쳐 증,

개축을 통해서 완전히 요새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한편 외양포의 일본군사시설 유적과 유구는 어느 곳에 비해서

그 수가 많고 잔존상태도 양호하다.

이렇게 잘 남겨진 것은 해방과 함께 이 일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되고,

토지나 가옥들이 국방부 소유로 귀속된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쫓겨났다가 귀향한 주민들은 일본군 막사를 가옥으로 사용하고,

전답을 일궈 산다.

 

 그러나 가옥이나 전답은 국가에 임대하는 형식이다.

개발은 전혀 이뤄지지 않아서 34가구에 주민은 60여 명에 불과하다.

 옛 막사 건물 그대로인 마을은 워낙 한적해서 시간을 거슬러 일제강점기에

 멈춰져 선 듯 하다.

일제의 침탈과 그로 인한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역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다음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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