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섬에·가면

박치기 왕 김일선수 기념체육관 (전남 고흥군)

구염둥이 2017. 1. 11. 23:28

김일선수 이야기

 

 

 

김일 선수는 1929년 2월 24일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평지마을에서 출생했고

1948년부터 1957년까지는 고흥에서

 씨름 선수로 활동하였다.
 

 국내 씨름판을 주름잡다 역도산의 레슬링 기사를 보고

 1956년 일본으로 밀항했다.

불법체류자로 잡혀 일본에서 1년간 형무소에서 복역하면서도 역도산에게 계속 편지를 써,

1957년 5월 7일 도쿄의 역도산체육관 문하생 1기로

입문하면서 레슬링을 시작했다.  [이지데이뉴스]

 

 

 

 

 

 

 

 

 

 

 

 

 

 

 

 

 

 

 

 

 

 

 

 

 

 

 

 

 

 

 

 

 

 

 

 

 

 

 

 

 

 

 

 

 

 

 

 

 

김일 선수는 스승 역도산 사후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 최고의

인기 절정을 누리며

1963년 미국 원정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제23대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챔피언 등 20여 차례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

 30여 년간 3,000여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 
 

  한국 프로 레슬링 1세대 격인 장영철과 천규덕 등과 함께

 레슬링의 전성기를 꾸려가다 1985년 현역 프로레슬링 선수에서 은퇴했다.
 

 현역 선수 은퇴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사업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런데다가 선수 생활중 박치기 등의 후유증으로 1987년부터는

각종 질병에 시달리다가 1994년 1월에 귀국하였고 서울 을지종합병원에서 입원하여

투병 생활을 하였다.

투병 생활하는 순간까지도 우리나라 프로레슬링 발전과 후진

 양성에 앞장섰다.
 

 현역 시절의 라이벌로인 일본의 세계적인 프로레슬링 선수

『안토니오 이노키 선수』 김일 선수가 병환으로 입원하자 문병하기도 했다.
 

 2006년 10월 26일에 그곳에서 향년 78세의 나이로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제자로는

 이왕표 선수가 있다.
 

 김일 선수는 생전에 고향발전을 위하여

 1968년 고흥군 금산면에 최초 한국전력 전기를 연결해주었다.

 

 또한 조국의 체육발전 위하여 1975년에는

서울 정동 김일 문화 체육관을 설립했주었고,

 프로레슬링 발전과 후배 양성을 위하여 온 힘을 기울였다.[이지데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