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트레킹·여행

군산 뜬다리(부잔교) 진포해양공원 아이들과 함께가면 좋은 공부가될듯! (전북 군산시)

구염둥이 2016. 2. 29. 11:01

군산 뜬다리(부잔교)진포해양공원 이야기

 

 

 

"군산은 인근의 호남평야와 항구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으로 혼란했던 한국사에 시대적 배경지로 자주 등장했지요. 도심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유산의 형태적 특성을 알고 답사길에 오른다면 좀 더 많은

근대문화유산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탁류’의 배경이 된 1930년대 전성기 군산항의

상징물이 아직도 내항에 남아 있습니다.

박물관 앞의 군산내항의 뜬다리 부두(부잔교 浮棧橋)는 일제가 곡물 수탈을 위해 만들었던

부산물에 다름 아닙니다.

 

부잔교는 조석간만의 차가 심한 곳에 물때와 관계없이

 선박이 자유롭게 접안토록 물위에 설치된 시설물로, 일명 ‘뜬다리 부두’로 불리웁니다.

물 수위에 따라 다리가 올라갔다 내려갔다고 해서 그렇게 부르며,

 이를 인해 현지 여객선과 어선들의 안전사고 예방은 물론

어민들의 소득증대에도 일조를 하고 있습니다.

 

 

 

군산지방해양항만청은 현재 군산 내항에

부잔교 4기, 역무선 잔교 6기, 국제부두 잔교 1기 등이 만들어져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군산 내항 뜬다리 부두를 볼 때면

 역사의 아픔이자 민족의 설움을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이 지역은 특히, 개항 초기 일제가 한국을 쳐들어오기 위한 출발점임과 동시에

 호남지방의 쌀을 일본으로 실어가기 위한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던 곳입니다.

 이 때 이 곳을 드나들던 선박들은 우리지역에서 수집한 농산물이나

 일본에서 들여오는 공산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1899년 5월 1일 조그만 포구였던 군산항이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어 조선에서 일곱번째로 개항을 합니다.

개항 당시 500명이 채 안됐던 군산 인구는 8,000여명의 일본인들이 건너오고 간척지나

 얻어볼 요량으로 소작에 나선 조선인들까지 가세해 북적댔습니다.

하지만 당시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고 반출 미곡량 역시 전국 최대인 항구였지만

 군산의 조선인들은 비료로나 쓰는 말린 콩껍질죽을 끓여먹으며

 삶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새전북신문펌)

 

 

 

 

 

 

 

 

 

 

 

밀물 때는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수면만큼 자동으로 다리가 떠오르는

부잔교처럼 우리네 삶이 마음 먹은대로 척척 잘 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언제나 부잔교 위에서 멀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삶은 언제나 물 위에 떠다니고 있지만

부평초처럼 그렇게 흘러가는 삶이라고.

 

 

 

많은 종류의 군장비들도 다 볼 수있는 이야기

 

 

 

 

 

밤낮으로 쌀을 실어냈다는 선창의 철도는 녹슨 채 잠들어 있습니다

. 할 일을 잃은 채 무심하게 길손을 맞고 있는

 뜬다리 부두에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 조선의 사회상을 풍자한 ‘탁류’ 속 주인공 초봉의 슬픈 삶도

무심한 세월과 함께 묶여있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군산 내항의 뜬다리를 보면 째보 갑술이가 낄낄대며 지금이라도 건너올 것 같습니다.

소설 속의 탁한 금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새전북글)

 

 

 

 

 

 

 

 

밀물 때는 다리가 수면에 떠오르고 썰물 때는 수면만큼 자동으로 다리가 떠오르는

 부잔교처럼 우리네 삶이 마음 먹은대로

 척척 잘 풀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밤낮으로 쌀을 실어냈다는 선창의 철도는 녹슨 채 잠들어 있습니다.(펌)

할 일을 잃은 채 무심하게 길손을 맞고 있는

이야기


 

 

 

진포해양공원으로 가는 구불길

이곳에서 뜬다리도

함께 만날수가 있다는 이야기

 

 

♪♬배경음악 봉은주 여인의길 

 

 

 

이렇듯 군산에가면 아픔의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어

그 당시의 생활 모습을 다 볼 수 가있다는 이야기

 

군산으로 가볍게 느린 시간 여행

지금 떠나면 좋을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