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포 이야기**^
부산 강서구 가덕도는 작은 섬이지만 역사의 아픔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일본군이 전쟁 승리를 위해 우리 국민을 강제 동원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러일전쟁의 자취가 생생하다.
역사는 아픔과 기쁨의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
그런 모습 중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것도 기억해야만 같은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100년 전 전쟁의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당시의 고통과 현재 평화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다
부산 강서구 가덕도는 작은 섬이지만 역사의 아픔을
많이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일본군이 전쟁 승리를 위해 우리 국민을 강제 동원한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러일전쟁의
자취가 생생하다.
역사는 아픔과 기쁨의 다양한 모습이 공존한다.
그런 모습 중 돌이키고 싶지 않은 것도 기억해야만 같은
괴로움을 겪지 않는다.
100년 전 전쟁의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당시의
고통과 현재 평화의 중요성을
공감할 수 있다.[김인남문화해설]
문화해설사님의 이야기를 귀에 담아본다
깨끗해진 가덕도 대항마을이다
록봉민속박물관에서 도시락 점심을 먹고
와양포로 가는 이야기
대항마을 앞 이다
언덕 고개를 넘으면 외양포다
대항마을의 유료 낚시터다
우물터이다
일본군이 사용했다고 하는 이야기
외양포마을 앞 몽돌해수욕장
외양포 마을 건물은 과거 일본군 막사
- 산자락 오르면 거대한 포진지 만나
- 콘크리트 진지 둘레로 제방 쌓아 방어
- 러시아 발트함대 상대 치열한 전투
헌병부 일본군의 위병소라고 하는 이야기
지금도 거주하며 살림을 하고 있다
지금 까지 건물은 그대로이고 지붕만 가끔씩
보수를 하면서 살고있다는 이야기
무궁화 꽃이 피였습니다
화장실 이라는 이야기
얼마전에 발견되였다고 하는 화장실터 란다
문화해설사님 이야기
앞 부분
[사 령 부 발] 까지는 보이는데 잘 안보이는 이야기
파묻혀 있는걸 발견해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이야기
뒷부분
대나무 숲
포진지
포진지 흔적들!
그때의 상황을 상상해 본다
포진지 흔적!
아픔의 현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일본군의 요새
동굴
외양포 포진지 꼭 기회가 되시면 함 둘러보시길 바랍니다
말없이 서 있는 저 나무는 그때의 많은 이야기를 알고 있으려나
궁금한 이야기
포진지에서 올라오면 이렇게 바다가 보이는 이야기
이곳에서 무슨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해 본 이야기
외양포 마을 언덕에 있는 일본군 요새 사령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포진지 터에는 탄약고,
방공호 등으로 쓰였던 공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곳을 덮고 있던 대나무와 칡덩굴을 다 걷어내
말끔한 모습이다.
꼭 가봐야할 곳 이라는 이야기
일본 사람들이 찾아와서 꼭 보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이곳은 얼마전에 발견된 화장실 터 라는 이야기
벌써 익어버린 감 가을이 빨리 왔나보다
누리장나무 이쁜 이야기
물이 있는 샘
남아있ㄹ는 아픈 흔적들!
오래 잘 남겨서 일본 사람들이
꼭
와서 볼수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부산관광공사와 함께한
#서부산 즐겨보기
#MBC투어
#버스킹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해설사님이랑 함께 한 시간였어요
함께한 님들께 감사드려요
포진지에서 내려오는 도중 마을 3~4곳에서 일본군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터도 볼 수 있다.
그중 지금도 주민이 식수로 사용하는 우물이 있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우물대와 지붕처럼 만들어진 것이
일본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우물에 양수기를 설치해 퍼올려 사용하는 듯했다.
두레박은 없지만 맑은 물이 충분해 보였다.
한지붕인데 두가지의 색이되여 있는건
두집이 산다는거구 서로 분쟁없이 전기요금
그외 납부할 돈을 두말없이
내는거라고 한다
똑같이 분활한다는 의미 ...........
경로당 이다
비온뒤의 버섯 이야기
다시 원점 회귀니 대항 마을이다는 이야기
대항마을이 이렇게 달라진 이야기
유료 낚시터가 생겨서 깨끗해 보이고 좋다는 이야기
외양포 포진지로 올라가는 길에 만난 집들은 하나같이 같은 모습이었다.
1층으로 아이들이 블록으로 집을 지으면
이렇게 만들 것 같은 아주 단순한 형태의 집들이었다.
알고 보니 일본군 막사로 쓰이던 건물에 여전히
사람이 사는 것이었다.
그린벨트 지역인데다 국방부 소속이라 건물의 증·개축이 불가능해
본의 아니게 유지되고 있었다.
지붕만 비가 새지 못하게 손을 본 것을 빼고는 외관이 그대로였다.
약해진 벽을 보강하려고 댄 철판에 녹이 잔뜩 슬어 있었다.
그런 집들에 TV 송신을 위한 접시형 위성통신안테나가 달린 게 아주 이색적이었다.
이런 집 옆에는 공들여 가꾼 텃밭이나 작은 꽃밭들이 소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100년 전, 군인들이 살던 집이 민가가 되고 화약과 탄피가 난무하던 공간에
꽃들이 웃고 있었다.
결국 인간의 다툼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 앞에서는 아무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곳이었다.
10분가량 걸어 올라가면 군대 훈련장인가 싶은 외양포 포진지 터와 마주하게 된다.
마을 산자락이라 아래 해변이 훤하게 내려다보인다.
지금은 '경치가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는
포 발사 굉음과 화약, 무기들이 가득 찬 살벌한 공간이었다.
이곳은 칡덩굴과 대나무들로 덮여 폐허나 마찬가지였던 것을
15년 전 강서구청에서 정비해 현재는 말끔한 모습이다.
콘크리트 진지, 탄약고, 무기고이자
방공호로도 사용되었으리라 짐작되는
공간이 잘 보존돼 있었다
100여 년 전 일본군 제4사단 휘하 진해만 요새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다.
당시 이곳에 있던 마을을 불태우고 주민을 강제 이주시켜 만들었다.
가로 30m, 세로 70m 크기의 진지에는 최대 8대의 곡사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포진지를 둘러가며 제방을 5m로 쌓아 외부에서
잘
발견되지 않도록 설계했다.
동행한 최부림 부산관광공사 차장은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의 정보력이 무척 뛰어났다.
무적함대라 불리던 러시아 발트함대가 가덕도 앞바다로 지나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3개월 동안 이곳과 대항 새바지 인공 동굴에서 포 발사
연습을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간 강해상 동서대
관광학부 교수도 "발트함대는 도대체 포가 어디서 발사되는지조차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반격은커녕 바다에서 궤멸해
수장됐다"고 덧붙였다.
포진지에서 내려오는 도중 마을 3~4곳에서 일본군이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터도 볼 수 있다.
그중 지금도 주민이 식수로 사용하는 우물이 있다.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우물대와 지붕처럼 만들어진 것이
일본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우물에 양수기를 설치해 퍼올려 사용하는 듯했다.
두레박은 없지만 맑은 물이 충분해 보였다. [김인남문화해설사]
외양포**^
이렇게 가덕도를 둘러보며
많은걸 알고 온 뿌듯한 이야기
해설사님의 말을 들었지만 잊어버린것고 있구
남아 기억하는것도 있으니
잘
다녀온것 같다
#부산관광공사와 함께한 #서부산 즐겨보기
#버스킹이 있었기에
편안하게 해설사님이랑 함께 한 시간였어요
함께한 님들께 감사드려요
#나에일상 #걷고 보고
'그·섬에·가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령도 사자암~ 두문진선대암~ 형제바위 넘 멋져요** (인천시 옹진군 백령도) (0) | 2016.09.30 |
---|---|
백령도 46명의 천안함용사들 위령탑! 심청각 둘러보기 (인천시 옹진군) (0) | 2016.09.30 |
가덕도 대항 "록봉민속박물관엔 없는것 없이 다 있다*가족과 함께 꼭 함 가보세요 (부산시 강서구) (0) | 2016.09.13 |
가덕도 정거마을은 멋지고 예쁜 벽화그림이 그려져 있다!! (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0) | 2016.09.13 |
가덕도에도 예쁜 둘레길[갈맷길] 국수봉[138.9m]가 있다.(부산시 강서구 가덕도) (0) | 2016.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