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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역사관) 아픔의 현장을 가보다

구염둥이 2017. 7. 4. 14:35

서대문 형무소 역사의 현장을 가본 이야기

 

 


일제강점기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에 있었던 형무소

. 전신(前身)은 형조의 지휘를 받아 죄수를 관장하던
전옥서(典獄署)이며,

1908년(순종 2) 10월 21일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四天王要馬)의

설계에 의해 인왕산록(仁王山麓)의 금계동에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인 경성감옥으로 준공되었다.

수용능력은 500명 정도였다.


그후 여러 차례 증축되면서 1912년 일제에 의해 서대문감옥으로,

1923년에는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되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시위관련자 1,600여 명을 포함해 3,000여 명이

 수용된 것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에 허위·유관순·강우규

수많은 애국지사가 수감되었던

 민족수난의 현장이었다 [다음백과]

 

 

 

 

 

 

 

 

 

 

 

 

 

 

 

 

 

 

 

 

 

한참을 서서 보았다

서마다 사연이 있어서 들어와 있었겠지만

아픔이다

 

 

 

 

 

 

 

 

 

 

 

 

 

물고문하는곳...

 

 

 

 

 

 

 

 

 

 

지하 독방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눈물이나고 가슴이 아파서

둘러보는 동안 계속 마음아파 했다

 

 

문을 열고들어가 보니 겨우 한사람도 앉지못하고 서 있어야 했다

 

 

 

들어가 보았다는 이야기

 

 

 

 

 

 

 

 

 

 

 

 

 

 

 

 

 

 

 

 

 

 

 

 


해방 후 **^


1946년에는 경성형무소로, 다시 1950년에는 서울형무소로 개칭되었다.

1961년 개정된 행형법(行刑法)에 따라 서울교도소가 되었으며,

1967년 7월 7일에는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다.

1987년 건물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했다.


간첩·사상범, 많은 운동권 학생과 재야인사 등이 거쳐간 곳으로서

 한국의 교도행정상 빼놓을 수 없는 기념지였다.
이곳에는 특수고문실 등이 있는 감방과

 강우규·송학선이 처형된 사형장 및
일반사무실·교회당·공장·창고·취사장·식당·세면장·감시탑과 운동장 등이 있었다.

 육영수 여사 저격범 문세광, 박정희 대통령 살해범 김재규 등
당대의 화제가 되었던 사형수들에게 이곳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1987년 3월부터 서울특별시는 민족의 수난과 독립운동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 전체를 사적으로
지정,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조성했다.

 같은 해 11월 15일 구치소의 시설과 인원이 의왕시로 이전한 이후

 모두 15개 동 가운데 5개 동과
중앙사, 나병사 등을 보존했다.

 김구, 강우규, 유관순 등의 인물이 투옥되었던 제10ㆍ11ㆍ12사의 감옥건물과 사형장이 1988년 사적
제324호로 지정되었고,

1988년부터 공원이 조성되기 시작해서 1992년 8월 15일 서대문독립공원으로 개원했다.

1998년에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이 개관했다. [다음백과]

 

기회되면 꼭 함 가보시면 좋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