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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신륵사는 남한강과 함께해서 아름답다 (경기도 여주시)

구염둥이 2017. 7. 5. 14:23

신륵사 이야기

 

 

신륵사는 낮고 부드러운 곡선의 봉미산(鳳尾山)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절 앞으로는 ‘여강(驪江)’이라 부르는 남한강이 유유한 자태로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이다.

 이 사찰은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지만

창건 시기를 뒷받침할만한 자료는 없는 상황이다.


신륵사가 유명해진 시기는 고려 말부터인 것으로 보인다.

 즉 김수온(1409~1481)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7 여주목 불우조(佛宇條)에서 “옛날 현릉의 왕사 나옹과

 목은선생 두 사람이 서로 이어 와서 (신륵사에서) 놀았다.

 이로부터 이 절이 드디어 기좌(畿左)의 유명한 절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 신륵사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석종, 보제존자석종비, 대장각기비, 보제존자석등, 조사당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보전,

 팔각원당형석조부도 등이 있다.

 

 

 

 

 

 

 

차에서 내리니 또 비는 비켜준다

ㅎㅎㅎ

 

 

 

 

 

남한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풍류를 즐기러 나온 선비처럼 한가롭게 보인다

 

 

 

 

 

 

 

 

 

다 둘러볼려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으론 모자란다

 

 

 

 

 

 

 이곳에 앉아있으면 글을 쓸줄 몰라도 시가 절로 나올것 같다

 

 

 

 

 

또 빗방울이 떨어진다

 

 

 

강월헌(神勒寺 江月軒)


나옹화상의 화장터에 건립된 석탑과 인접해 건립된 6각형의 정자이다.

강월헌은 나옹화상의 당호로 그를 추념하기 위해 건립했던 정자로 생각된다.

이 정자는 본래 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대 홍수시 파괴되는

바람에 현재의 위치에 콘크리트로 건립했다.

 

이 정자는 신륵사를 감아 흐르는 여강의 암반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백사장과 강물

그리고 멀리 보이는 여주평야 등은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신륵사


신륵사 다층전탑(1726 중수), 보물 제226호, 높이 300cm, 경기 여주시 천송동

 

각 층의 옥개는 옥신에 비해서 극히 간략화되어 있다.

상륜부는 전으로 된 노반 위에 화강석으로 된 복발·앙화·보륜·보개 등이 얹혀 있다.

북쪽에 있는 이 탑의 수리비에 "崇禎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이라고

 씌어 있어서1726년(영조 2)에 중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다음백과]

 

 

 

 

 

 

 

 

 

 

범종각이다

 

범종각(神勒寺 梵鐘閣)
범종각은 범종(梵鐘), 법고(法鼓), 운판(雲版), 목어(木魚), 즉 불교에서 말하는

사물(四物)을 조성하여 둔 곳이다.

범종은 그 소리로 인하여 일체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 지혜를 증장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데 그 의미가 있으며,

법고는 축생의 무리에게, 목어는 수중의 생명에게,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전해 해탈성을 염원하는 의미가 있다.

아침과 저녁에 예불을 드릴 때 법고·목어·운판·범종

순서로 치게 된다.

종각 내에는 법고가 2점 있는데

 대고(大鼓)는 매우 두꺼운 원통형의 형태이다.

모두 조선말기의 작품이다.
목어는 길이가 237㎝이다.

몸에는 지느러미와 비늘을 선명하게 표현하였고 입에는

여의주(如意珠)가 물려있다.

 조선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다음팁]

 

 

 

 

 

 

 

 

저기 가운데를 보면 불공드리는 여인의 그림같은 이야기

 

 

 

 

자세히 봐야 보인다

 

 

 

 

 

 

 

 

 

 

우리사랑이도 인증샷

 

 

 

 

 

 

 

 

 

 

 

 

 

카페에 앉아 있을 시간이 없어

우린 비를 피해 또 움직인데...갈길도 멀다

부산으로 출발...

 

 

 

신륵사의 유래와 전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났는데,

 이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워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다.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신륵사의 다양한 문화 유물


신륵사 인근 강가쪽 암반 위에 벽돌로 쌓은 다층 전탑이 있어서

고려 때부터 벽절이라고도 불렸다.

나옹화상이 이 절에서 입적을 했고,

그의 보제존자석종은 1379년에 제작된 것으로 고려 말의 대표적인

부도 양식을 띠고 있다.

 

성종 옆에 있는 석종비문은 목은 이색이 썼다.

역사가 깊고 규모도 웅장하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다. [다음팁]

덥고 비 오고 조금은 힘든 이틀동안

보람있고 멋진 여행이였다

더운데 함께한 우리사랑이에게도

고마운 맘 전한다

 

#경기도 #여주 #신륵사#나에일상 #걷고 보고